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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두 딸을 둔 60대 아버지의 심리

by romantic.gugu 2025. 2. 8.

요즘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딸은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대’라며 씁쓸하게 웃는 60대 아버지들이 꽤 많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동네 산책길에서도,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버지들은 한결같이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이었으면 또 모르겠는데, 딸들은 더 결혼 안 하려고 하더라니까.’ 그런데도 속내를 깊이 들여다보면, 정말 딸이 결혼을 안 하는 게 문제라기보다는, 자신이 예상했던 미래와 현실의 간극이 주는 낯섦과 막막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생 가정을 위해 달려왔는데, 이제야 한숨 돌리고 보니 딸이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려 하고,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다.

사실 60대 아버지들이 딸의 결혼 여부를 두고 가지는 감정은 단순히 ‘결혼을 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만은 아니다. 오랜 세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아온 탓에 ‘딸이 시집가는 것’이 부모로서의 마지막 책임이라는 인식을 갖고 자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다르다. 자식이 결혼을 해야만 행복한 것도 아니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필수적인 삶의 목표가 되지 않는 시대다. 딸들은 결혼하지 않아도 충분히 안정된 삶을 꾸릴 수 있고, 오히려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 입장에서는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왠지 모르게 서운한 감정이 남는다.

이러한 감정의 밑바탕에는 ‘나는 이제 딸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이 자리 잡고 있다. 딸이 결혼을 하면 사위라는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손주가 태어나면서 새로운 관계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딸은 여전히 자신의 곁에 있지만, 예전과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불안해진다. 어릴 적엔 아버지를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사람이라 여기던 딸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결정과 삶의 방식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괜히 서운해진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딸이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것은, 결국 아버지와의 관계가 평생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족 구성의 형태가 바뀌고, 전통적인 틀이 깨지는 시대라고 해도, 아버지와 딸의 관계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형태는 달라지겠지만, 딸이 아버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때로는 예전처럼 의지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만큼 더 성숙한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60대 아버지들이 딸의 결혼 유무를 걱정하는 심리 속에는 단순한 가치관의 차이만이 아니라, 인생 후반부로 접어들며 느끼는 관계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섞여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딸이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시간과 대화의 질이다. 어릴 적 딸이 아버지를 향해 웃으며 이야기하던 모습을 떠올려 보자. 그때처럼, 여전히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결혼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질 부녀 관계를 상상하며 말이다.

딸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변화는 단순히 결혼 유무에 국한되지 않는다. 60대 아버지들은 어느 순간부터 딸과 대화가 예전처럼 깊지 않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어릴 때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늘어놓던 딸이 이제는 자신의 고민이나 생각을 말하지 않는 것 같고, 대화를 해도 건조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아빠, 나도 알아서 할게’라는 짧은 말 한마디가 유난히 차갑게 들릴 때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거리감이 생겼다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딸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부모의 품을 떠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다. 예전처럼 모든 걸 공유하지 않는 것은 곧 독립적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세상의 기준이었지만, 이제는 딸 스스로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예전처럼 ‘해결사’가 아니라, 조용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것이다.

60대 아버지들은 딸이 스스로 결정한 길을 응원하는 것이 때로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괜찮을까?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느끼는 불안과 걱정이 딸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직접적으로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앞으로 계획이 뭐야?’ 같은 질문보다는, 그저 딸의 삶을 존중하고, 필요할 때 조용히 힘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하다.